북유럽여행 러시아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을 가다 (2-2)
크레믈린 궁
모스크바의 중심에는 크렘린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소비에트정권의 무시무시한 힘을 상징한 크렘린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소비에트정권의 중추임에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비밀에 쌓여 있었다.
그래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크렘린이라 부르기도 한다. 크렘린이 공개된 것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이다.
2.4킬로미터 길이의 성벽에 둘러싸인 크렘린은
면적이 28만 3000평방미터이고 성벽 중간 중간에는 18미터자리 뾰족탑들이 세워져 있다.
크렘린 내부에는 러시아정교회 대주교와 황제의 궁전, 성당 그리고 20세기에 세워진 행정기관들이 들어서 있고
그 주위에는 붉은 광장, 성바실리성당이 있다.
크렘린은 권력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세기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한 막강한 정책들이 은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크렘린은 1156년 처음 축성되었는데
당시에는 목재건물들이 오크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었고
면적은 지금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크렘린은 화재로 무너지고 다시 확장되는 과정을 자주 반복했다.
1367~1368년 드미트리 톤스코이 대공이 흰색 벽의 거대한 요새와 높은 탑들을 세웠는데
이때부터 모스크바는 ‘흰색 담의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렘린이 현재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차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독재자 이반 3세(Ivan Ⅲ, 1440~1505) 치하 때부터이다.
이반 3세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하기 위해 크렘린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1460년대 들어 크렘린의 석회암 성벽은 파손 상태가 심각해 붕괴할 위험에 처했다.
이반 3세는 자국 건축가들에게 보수시켰지만
결국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불러들여야 했다.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성벽을 길이 2235미터, 두께 3.5~6.5미터, 높이 8~19미터로 확장했고
‘제비꼬리’ 모양의 독특한 이탈리아식 총안(銃眼)을 도입해 방어기능이 주였던 요새를
왕조의 중요한 근거지이자 동방정교회의 요람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반 3세는 러시아 통일을 거의 완성했고 중앙집권화와 군주권 강화를 통해 독재자로 군림했다.
그 후 1571년 크렘린은 타타르족에게 파괴되고 약탈당했지만 1624~1723년에 주요 건물들이 또다시 증축되었다.
그런데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 후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했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났지만 크렘린은 큰 위기를 맞았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탈출하면서 크렘린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폴레옹의 명령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이때 파괴된 크렘린은 1838~1849년 보수되는 동시에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크렘린은 붉은 성벽이 감싸고 있는데 성벽은
다시 북서쪽의 네그린나야강, 북동쪽의 해자, 남쪽의 모스크바강에 둘러싸여 있다.
현재 네그린나야강은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밑으로 흐르고 있고
볼리사야 카멘니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강이 모스크바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볼 수 있다.(펌글)
점심식당 한식당
식당 밖에 화창한 하늘이 아름다워서...
모스크바 영화관
점심식사후 다시 크레믈린 궁으로 옵니다
트로이츠카야탑
크레믈린 궁으로 입장하기 위해 줄이 섭니다
크레믈린 궁 정문 탑인 트로이츠카야탑
입구 좌측에 있는 궁전 병기고, 무기고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도망갈때 탈취한 대포도 있다고 한거 같은데...
12사도교회는 17세기에 총대주교관저의 일부로 건설한 것이다.
이 대형 벽돌 교회는 원래 사도 빌립보에게 봉헌된 것인데
그는 이반 4세의 공포정치에 반대하다가 순교했다
. 교회의 설계와 세부 장식은 석회석으로 건설한 블라디미르교회에서 차용했다.
대통령 집무실
크레믈린궁은 1/3은 대통령 집무실, 1/3은 행정부, 1/3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네요
붉은 광장쪽 망루인 구세주망루(스파스카야탑)와 성 바실리 성당
차르의 대포
‘차르의 대포’ 역시 불운의 상징이다.
16세기 말 제작된 이 대포는 구경 890밀리미터, 무게 44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대포지만
단 한 번도 쏘아보지 못한 채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앞에 있는 포탄 1개의 무게도 1톤)
왼쪽 건물이 대통령집무실이고 돔건물이 국회의사당이라네요
차르의 종
높이 6미터에 무게 220톤이나 되는 ‘차르의 종’은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촬영 장소 중 하나다.
이 종을 주조할 당시 화재가 발생했는데
누군가가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뿌리는 바람에 종에 금이 가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그로부터 한 세기 뒤 당시의 참사를 되새기기 위해 종을 받침대 위에 얹어놓았다.
아르항겔리스키성당은 대천사 미카엘에게 바친 최초의 석조 교회로 이탈리아적인 특징이 강하지만
그와 동시에 십자가가 새겨진 러시아 전통 교회양식도 보여준다.
이곳은 역대 황제와 귀족들의 유체 안치소인데 총 48개의 관이 성당 곳곳에 놓여 있다.
‘뇌제’ 이반 4세의 관도 이곳에 있다.
이반대제의 종루
크렘린에서 권력의 최고 상징은 2단으로 된 높이 60미터의 ‘이반대제의 종루(鐘樓)’이다.
1505년 건축이 시작되어 1508년 완공되었다.
당시 모스크바에는 이 종루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는데 그것은 종루보다 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종루는 수차례 화재와 재난을 견뎠는데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 당시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인접한 건물 두 채가 무너졌을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왼쪽부터 아르항겔리스키성당, 블리고베시첸스키성당, 그라노비타야궁전, 우스펜스키대성당
대동령궁
아르항겔스키 대성당(대천사사원)
러시아군의 수호천사인 미가엘천사장을 위해 세운 성당으로
모스크바공국의 대공과 초기 러시아 황제들의 무덤으로 이용
이반대제의 종탑
약 400여년간 모스크바에서 제일 높은 건물로
이 종탑에는 무게가 70톤에 이르는 우즈벤스키 종과
21개의 크고 작은 종이 있다네요
블라고베시첸스키 성당(성모수태고지 사원)
블라고베시첸스키성당 뒤로 크렘린대궁전이 있는데 황제는 4층에 거주했다.
옥좌가 있는 방의 가운데 창을 ‘탄원의 창’이라고 하는데 이 창밖으로 늘어뜨린 긴 천 끝에는 상자가 매달려 있었다.
탄원할 것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내용을 적어 이 상자에 넣음으로써 황제에게 직접 탄원할 수 있었다.
이 궁전은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 때 소실된 후 1838~1849년 재건되었다.
700여 객실은 2만여 개의 촛대로 장식돼 있으며
가구 · 샹들리에 · 융단 · 회화 · 조각 등의 걸작이 전시되어 있어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호화로움에 떨어지지 않는다.
1934년 개축 때에는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련최고회의장(현 러시아국회의사당)과 중요한 방 몇 개가 만들어졌다.
그 방 중 가장 화려한 곳은 게오르기 훈장의 방이다.
우스펜스키 대성당(성모승천사원)
러시아 정교회 중앙성당이며 1498년부터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이며
모스크바 총대주교와 대주교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네요
내부관람이 가능한데
블라고베시첸스키성당은 다른 교회에 비해 러시아 색채가 강하며
이콘화와 요한묵시록을 소재로 한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답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 등과 모스크바 제후들의 초상화가 주랑 기둥 벽에 장식되어 있답니다
12사도교회
내부 벽화가 화려한 우스펜스키대성당
왼쪽 건물이 대회궁전
콘서트홀에 있는 러시아황제의 쌍두 독수리휘장
시내에도 러시아 정교회들이 많이 있더군요
이 날은 유명한 성당에 행사 참석을 위해 각지 수많은 신도들이성당에 들어 갈려고 천변에 줄을 서고 있더군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건물
언덕에 위치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도로건너편) 곳에서 모스크바 시내 조망을 하네요
모스크바는 산이 없고 또 단독주택도 없고 열차역은 있는데 모스크바역이 없다네요(3무)
최초의 우주인 유리가가린 동상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 공연으로 유명한 볼쇼이 극장
정식명칭은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대극장'
예카테리나 2세의 명으로 1776년에 건립되었으나
두번에 걸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56년에 완성한 건물
좌석수는 2,100여 석이며 오페라단과 발레단 그리고 부속학교가 있답니다
볼쇼이란 뜻은 크다 란 뜻...
아랍 상인들이 거래를 했다는 아르밧트 거리
이거리에는 조선인 출신 가수 빅토르 최의 추모의 벽이 있답니다
러시아인들이 사랑하는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 동판에서
푸시킨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
슬픔의 날 침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근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 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 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응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누구나 학창시절 한번쯤은 들어 봤던 유명한 시지만
이 시는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결투를 벌려
총상을 입고 죽기 직전에 남긴 시라서 더욱 유명하답니다
(푸시킨은 18세 어린 나이인 미모의 아내와 결혼, 4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사생활이 문란한 아내(나탈리아 곤차로바)때문에
발생한 아내의 정부 '단테스(프랑스 망명귀족으로 러시아 근위대 장교)'와의
결투로 총상을 입어 이틀후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함
그의 사망과 관련 많은 설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푸시킨과 부인 곤차르바 결혼기념 동상...아픈 가족사를 듣는데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네요
두삼의 손이 포개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사람의 손이 떨어져 있답니다
푸시킨의 생가
결혼하고 석달간 살았던 2층집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 살았다네요
외무성 건물
오후 4시경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기위해 모스크바공항으로 이동~
호텔안에 있는 일식당
공항으로 이동중
모스크바 강
11월부터 얼기 시작해 3월이후에 풀린다네요
러시아 현지 기사
모스크바에서 오후 8시 25분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 이동 러시아 휴양도시인 상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도착 (오후10시37분)
호텔로 이동 중
북유럽여행 3일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3-1)에서 계속~